경남공익활동단체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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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또 우릴 불렀다

youngsun1102

2021-10-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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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또 우릴 불렀다
-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를 맞아
한평생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햇살같이 살아오신 신부님
이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도록
독재의 칼바람에 각단지게 맞서
유월항쟁학생운동 뒷배가 되고
칠팔구 노동자 대투쟁 버팀목이 되셨던
말씀은 적어도
한 말씀 한 말씀 지름불로
청년 학생과 노동자들 갈 길 밝혀주시고
저 자신 세상 온갖 수고와
고난의 길 걸으셨던
신부님은 마을 당산 포구나무로 서서
가을 하늘 푸르디푸른 깊은 바다처럼 서서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이 찾는
포근한 둥지셨습니다
김영식 신부님!
이제는 저희들이 신부님 곁에 서 있겠습니다
어둑새벽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신부님 희망이 되겠습니다
- ‘김영식 신부님’, 김성대 -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남 고성 이화공원묘지 성직자묘역에서는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추모식에는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종교계와 정계, 학계, 각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참석하여 추도사를 하였다.


추모 행사의 말미에는 올해 6월에 부마민주항쟁과 유월민주항쟁을 이끈 공로로 고 김영식 신부님이 받은 국민훈장 모란장의 사본 증서를 올렸다. (본 품은 가톨릭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19년 10월 19일 선종한 김영식 신부는 경남 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 민주화 운동 뒷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피해 다녔다는 친척이 있는가 하면, 차에 지폐를 잔뜩 싣고 다니며 노동운동가들에게 전달하면서 투쟁 현장을 다녔으며, ‘핍박받는 자에게 중립은 없다’ 면서 싸우다가 안기부 고문으로 실명 위기도 감당해야 했었다. 1987년 유월민주항쟁의 현장에서도 항상 그를 볼 수가 있었고, 항상 소박하여 정작 옷 한 벌과 포니 승용차를 단종될 때까지 타고 다니는 등 자신에게는 엄격한 분이셨다.
참석자들은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를 맞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오셨던 그 삶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다짐하였고, 이후 고 김영식 신부 추모사업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조영선, 유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경남공익기자단 조영선 youngsun1102@naver.com>
-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를 맞아
한평생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햇살같이 살아오신 신부님
이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도록
독재의 칼바람에 각단지게 맞서
유월항쟁학생운동 뒷배가 되고
칠팔구 노동자 대투쟁 버팀목이 되셨던
말씀은 적어도
한 말씀 한 말씀 지름불로
청년 학생과 노동자들 갈 길 밝혀주시고
저 자신 세상 온갖 수고와
고난의 길 걸으셨던

신부님은 마을 당산 포구나무로 서서
가을 하늘 푸르디푸른 깊은 바다처럼 서서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이 찾는
포근한 둥지셨습니다
김영식 신부님!
이제는 저희들이 신부님 곁에 서 있겠습니다
어둑새벽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신부님 희망이 되겠습니다
- ‘김영식 신부님’, 김성대 -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남 고성 이화공원묘지 성직자묘역에서는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추모식에는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종교계와 정계, 학계, 각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참석하여 추도사를 하였다.


추모 행사의 말미에는 올해 6월에 부마민주항쟁과 유월민주항쟁을 이끈 공로로 고 김영식 신부님이 받은 국민훈장 모란장의 사본 증서를 올렸다. (본 품은 가톨릭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19년 10월 19일 선종한 김영식 신부는 경남 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 민주화 운동 뒷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피해 다녔다는 친척이 있는가 하면, 차에 지폐를 잔뜩 싣고 다니며 노동운동가들에게 전달하면서 투쟁 현장을 다녔으며, ‘핍박받는 자에게 중립은 없다’ 면서 싸우다가 안기부 고문으로 실명 위기도 감당해야 했었다. 1987년 유월민주항쟁의 현장에서도 항상 그를 볼 수가 있었고, 항상 소박하여 정작 옷 한 벌과 포니 승용차를 단종될 때까지 타고 다니는 등 자신에게는 엄격한 분이셨다.
참석자들은 고 김영식 신부 선종 2주기를 맞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오셨던 그 삶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다짐하였고, 이후 고 김영식 신부 추모사업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조영선, 유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경남공익기자단 조영선 youngsun1102@naver.com>